
대선 레이스가 뜨거워져 간다. 각 정당의 후보 윤곽이 뚜렷해진 가운데, 자연히 그들의 입에 시선이 쏠린다. 많은 대선 후보들이 전북특별자치도를 향해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지만 막상 당선 후엔 연기처럼 증발한 공약이 셀 수 없다. 전북 공약(公約)은 왜 늘 공약(空約)으로 끝나는가.
윤석열 7대 공약 중 '메가시티' 등 6개 무산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2월 전북을 찾아 새만금 메가시티를 중심으로 한 소위 '7대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다시는 전북 홀대론이 나오지 않도록 전북 발전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할 것"이라며, "전북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겠다"라고 기대감을 부풀렸다.
공약의 핵심은 새만금 메가시티와 금융중심지 지정이었다. 군산-김제-부안을 통합해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도시이자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하 새만금 지역 국제투자진흥지구 기정과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 착공 지원을 함께 말했다. 새만금 특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 운영, 빠르게 팔을 걷어붙이겠다는 실행 안과 함께였다.
금융중심지 지정은 전주의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중심으로 한 '연기금 특화 국제금융도시' 육성에 대한 청사진이다.
그 외에도 윤석열 정부에선 △친환경·미래형 상용차 생산 및 자율주행 실증단지,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 등을 중심으로 한 신산업 특화단지 조성 △전주~김천 동서횡단 철도, 전주~대구 고속도로 건설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농식품 웰니스 플랫폼 구축 △국제 태권도 사관학교와 전북스포츠 종합훈련원 설립 △지리산과 무진장(무주·진안·장수) 동부권 휴양관광벨트 구축 등을 내걸었다. 모두 실현된다면 최소한 전북의 진일보는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공약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2023년, 김주현 금융 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에서 "전북 제3금융중심지가 대통령 공약은 맞다"라면서도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같은 우선적 국정과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분개한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정읍시·고창군)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거짓 약속을 했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한 도전이자 파괴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무주 태권도사관학교 설립과 관련해서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용역 결과가 나왔음에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고, 국립전북스포츠종합훈련원 실현 예산도 배정하지 않았다. 그나마 용역이 실행된 두 가지와 달리 웰니스 관광 거점, 무진장 휴양관광벨트 등은 아예 논의 단계조차 밟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전주시갑)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역을 살리기 위해 최소한 대통령이 공약한 내용들이라도 임기내에는 힘들어도 첫삽은 떠야 되지 않겠는가"라며 유인촌 문체부 장관에게 적극 대처를 주문해야 했다.
그나마 새만금 투자진흥 지구 지정 사업은 기업유치지원실에서 진행, 투자진흥지구에서 높은 분양율을 보였다. 주요공약 7가지 중 1가지, 그 중에서도 일부만 이행된 셈이다.
매 정권 나오는 ‘전북 홀대론’…말로만 치유
전북도민들의 허탈한 마음은 사실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낮은 공약이행율로 실망을 안겼던 탓이다. 매 정권 '전북 홀대론'이 나오는 이유다.
전북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MB정부에선 확정된 혁신도시 이전기업 중 알짜배기인 '한국토지공사(LH) 빼가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당한 바 있다. 당시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로 이전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나왔던 박근혜 정부는 '7대 공약'을 내걸었다. 13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공약들이었으나, 취임 3년 차까지 약 2조원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도 약 10조 4000억 원이 필요했던 새만금에 2조원이 지원돼 '새만금 쏠림' 지적도 일었다. 당시 공약 부창대교(현 노을대교) 건설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엔 전북 소외론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호남에서도 소외가 되는 이중의 상실감과 아픔, 제가 전북의 친구가 되어서 풀어갈 것을 약속드린다"라며 도민들에게 호소했다. 실제 비교적 높은 공약 이행률을 기록하며 한국탄소진흥원 설립, 익산~대야 복선철도 , 새만금 개발공사 설립 등을 일궈냈다. 그러나 문 정부에서도 금융중심지 지정은 결국 이뤄내지 못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의 미완 과제를 중심으로, 전북의 오랜 숙제 풀이에 중점을 뒀다. 그래서인지 세 후보 모두 방법과 방향성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겹치는 공약들이 많다. 약속만 지켜진다면,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 금융중심지, 달빛철도, 새만금 재개발, 국가식품클러스터 확대 등은 누가 당선돼도 전북에서 일어날 일들이다.
다만 지난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두 번째 TV 토론회가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지며 또다시 민심을 불안케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 후보가 참여한 토론회는 120분간 상대를 향한 비난과 비방, 말꼬리 잡기와 태도 지적 등으로 가득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번에야말로 173만 전북 도민들의 숙원이 이뤄질 수 있을까. 전북 정계의 한 원로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서울서는 호남 홀대론이란 말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전북 소외론'이다"라면서 "공약이 10년은 기본이고 20년째 '재탕'되는 것도 많다. 이번에야말로 전북 맞춤 공약이 실현돼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